친정(?) 대우조선해양과 조선업의 위기에 대한 기사들을 보면서

요즘은 하루에도 몇번씩 나의 첫 직장이었던 대우조선해양 및 조선업계의 적자 소식을 보게된다.

남들이 보기엔, 다행히도 어려운 시기 전에 회사를 나오고 내가 하고 싶은일 하고 있어 다행이다 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사실 나 스스로는 회사를 그만둘때 훨씬 깊은 고민과 생각을 했었다.

개인적으로는 수차례 언급했었지만,

대기업이라는 건 기업 규모가 다른 기업에 비해 크고 근무하는 사람이 많고 이 사람들을 먹여살리기 위해서 혹은 사람들이 많은 이점과 사회구조적 위치, 회사의 역량을 활용하여 큰 규모의 사업을 하는 회사다.

이런 대기업도 시장상황이 악화되어 사업환경이 어려워지면 돈을 벌지 못하게 되고, 이렇게 될 경우 직원들은 당연히 그에 대한 손해를 함께 감수해야 하는 구조다.

내가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어야 겠다고 생각한데는 크게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번째는 많은 직원들의 안일함.

3년이 좀 넘는 근무 기간 중, 1년이 좀 넘는 기간을 거제도 옥포에 위치한 야드(Yard)에서 근무를 했다. 당시 배웠던 것도 너무 많고 즐거웠던 기억도 많지만, 아쉽고 놀라웠던 것은 많은 사람들이 회사가 자신에게 월급을 주는것은 당연하며, 조선업이 호황이었을 때의 월급 혹은 연봉을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아마, 내가 정말 월급 받을 만큼 일을 하고 있는지 곱씹어 보는 사람들 거의 없었을 것이다.)

회사의 경영진은 매일 매일 경영난이라고 하며, 비용 절감 및 업무 효율화에 앞장서 달라고 부탁했지만, 그 부탁을 실행에 옮기는 직원은 많지 않았다. 회사가 수년동안 양치기 소년 행동을 했던 것도 있겠지만 너무 커져버린 조직에서 개인들은 ‘나 하나쯤이야’하는 생각에 쉬쉬했던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일을 했으니 월급이 나오겠지하는 근거없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


두번째는 치떨리는 조직 이기주의.

개인적으로 3년 조금 넘는 짧은 기간 동안 연구조직에도 있었고, 현업조직에도 근무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조직 이기주의는 현업조직에서 조금 더 심했다고 생각하는데, 눈 앞에 놓인 큰 문제를 두고서 누가 이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하는지를 결정하기 위해 정말 수차례의 회의, 수없이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정작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집중하지 못했다.

물론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었다. 조직마다 하달받은 KPI라는 것이 있었고 조직의 그 해 존재의 목적은 KPI를 소폭 초과달성하는 것이었다. (내가 이해한 바론, KPI를 과다하게 초과달성할 경우 다른 조직들이 싫어할 수 있고, 그 다음해 KPI를 설정할 때 너무 높은  KPI를 설정해야 하므로 여러모로 손해인 것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아무리 큰 문제가 생기고 이 문제가 회사 경영에 차질이 생길수 있다고 해도, 각 조직의 KPI와 관련되지 않으면 일단을 모른척했고 간혹 누군가 문제 자체에 집중하여 일을 하자고 하면 ‘쟤 왜 저래?’ ‘일이 별로 안바쁜가보지?’식의 반응을 보일 때도 있었다.


세번째는 효율적인 일 처리의 불필요함.

내가 근무한 기간만 두고 봤을 때, 인사고과를 잘 받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었다. 남들 만큼 연간 계획을 세우고, 보스가 중요시 하는 업무를 잘 처리하고, 업무의 절대적인 시간을 상위권으로 만들면 되었다.

남들만큼 연간 계획을 세운다는건…? 효율적으로 보면 업무로드를 공평하게 분배한다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부분 하향평준화 되게 되었다. 뭔가 올해 더 많은 일을 추진해서 성과를 빨리 거둬보자는 생각보단 올해 이정도 하면 충분하겠지라는 컨셉이었다.

보스가 중요시 하는 업무를 잘 처리하고…? 많은 신입사원들이나 주니어들이 대기업에 입사해서 이해할 수 없는 일 들중에 하나는 쓸데 없는 일이 너무 많고, 자기에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경험이 많지 않기에 모든 경우에 이렇다고 할 순 없지만, 내가 겪었던 것들은 보통 임원진에서 ‘갑자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이나 임원 개개인이 흥미를 느껴 추진해보고 싶었던 일들이었다. 대게 이런 일들은 연간계획에 반영되어 있지 않고, 번외로 주어졌고 많은 사람들을 괴롭혔지만… 시간이 지나면 보스가 중요시 하는 업무들을 잘 처리한 부하들은 보스의 예쁨을 받고 고과를 잘 받을 수 있었다.

업무의 절대적인 시간… ?사실 어느 이상의 질 좋은 결과물을 위해서는 시간 투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보통 야근을 많이 하는 기업들의 경우 필요이상의 초과근무를 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어떻게든 오래 일을 하다보면 해결되겠지, 혹은 일을 오래 많이 해야 결과물이 좋을거야 라고 생각하는 구시대적인 사고가 반영되어 있었던것 같다. 이렇다보니 오히려 자기 업무를 효율적으로 마무리하고 자기의 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이 소외되었다.


혁신이 불가능할 것 같다는 느낌.

대부분의 회사에는 전략기획실 등의 회사의 미래를 구상하고 실천하는 조직이 있다. 물론 내가 그 부서에서 직접 일을 해보지 않아서 정확히 판단하긴 애매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론 미래에 대한 전략기획보단 현재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결전략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단순히 생각해보면, 미래에 대해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현재 벌어진 문제에 대해 해결하지 바빴을 수도 있다.

그리고 설사 전략기획실에서 미래에 대한 준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어, 현업 조직과 연구 조직을 싱크탱크로 활용한다고 한들 지원을 해주지 않았다.

서류상으로도 각 부서간의 영역을 침범하는 문구가 포함될 경우, 부서장간에 많은 다툼이 있었고 예산 책정, 집행 등의 보다 실질적인 범위에 들어오면 정말 살벌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제대로 키워질 수 없었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던 사람들도 그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위에 쓴 글은, 내가 퇴사를 앞두고 정들었던 부서사람들과 회식자리에서 했던 말 같기도 하다.

위에는 부정적인 말만 나열했지만(왜냐하면 이 글을 쓴 이유가 그러하니까)

첫 직장을 대기업에서 연구업무, 글로벌 비즈니스, 설계업무 등 다양한 업무를 하면서 배운것도 정말 많았다.

수천명의 직원을 거느리는 조직이라는 것, 업무를 흘러가게 하는 시스템, 그리고 일을 하면서 만났던 소중한 선배님들, 조직의 일원으로서의 역할들, 그리고 일을 해보지 않으면 배우지 못하는 실무 스킬.

아무쪼록 앞으로 친정 대우조선해양과 조선업계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으나, 부디 위기를 잘 극복하기 바란다. 아직 내 친구들과, 선후배들… 그리고 어쩌다가 마주쳤을 많은 가장들이 계시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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